Page 113 - 고경 - 2018년 9월호 Vol.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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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를 해결하고는 선정 삼매에 든 부처님의 삶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부처
님은 문 앞으로 바람만 지나다니는 곳에서 살지 않았습니다. 늘 세상 속에
서 사람들과 함께였습니다.
저는 『금강경』의 유명한 ‘사구게’보다 「법회인유분」의 심심한 문장을 더
좋아합니다. 부처님의 하루가 말갛게 보입니다. 이보다 투명한 삶은 없을
겁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후 입멸하시기까지 49년 동안의 하
루하루를 여기에 포개 놓아도 어디 한 곳 삐져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어떠
한 장엄으로 표현한 부처님의 모습보다 더 거룩합니다. 그런데 이런 부처
님의 단순한 삶에서도 단 한 가지 문제에서 만큼은 자유롭지 못한 적이 있
었습니다. ‘먹는 일’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한때 ‘먹는 문제’에 목숨을 걸다시피 매달렸습니다. 우리
가 흔히 보는 뼈만 남은 부처님 ‘고행상’은 이 때의 모습입니다. 그때 부처
님의 고행 주제는 ‘먹는 일로부터의 자유’였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스스
로 고행의 결박을 풀고 수자타로부터 ‘유미죽’을 받았을 때, 함께 고행했던
다섯 비구가 부처님을 비난한 목소리에 그때의 정황이 생생히 드러납니다.
“붓다가 예전에는 하루에 참깨 한 알, 곡식 한 톨만 먹었는데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다. 이제 속세에서 신身·구口·의意 삼행을 제어하지 않는
데 어떻게 해탈을 얻을 수 있겠는가?”(『불교음식학―음식과 욕망』, 89쪽, 불광출
판사)
부처님은 하루 ‘참깨 한 알’의 극단적 고행에서 벗어나 ‘유미죽’을 드셨
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중도’를 선택한 것입니다. 해탈의 수단이
어야 할 ‘고행’이 목적으로 뒤집힌 상황에서 빠져 나온 것입니다. 유미죽은
극한적 절식에서 비롯되는 육체적 속박으로부터 풀려나오게 하는 열쇠였
습니다. 자유로워진 육체의 힘은 선정禪定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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