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8 - 고경 - 2018년 9월호 Vol.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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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자비로우나 널리 펴지는 못하는구려. 어찌 부자 마을을
버리고 가난한 마을인지요. 마땅히 평등하게 차례대로 걸식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오직 먹기 위하여 걸식하지 않는 까닭에 걸
식해야 할 것이며, 마땅히 오온으로 뭉쳐진 육체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먹고, 마땅히 받지 않기 위하여 받아야 합니다. 마을이
비어 있다는 생각으로 마을에 들어갈 것인 즉, 보이는 바 색은
눈먼 이와 같이 하고, 들리는 바 소리는 메아리로 여기며, 맡는
바 냄새는 바람으로 알고, 먹는 바 음식 맛을 분별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느낌을 받아들이되 지혜를 증득한 바와 같이
하여야 할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환상과 같아서 자성도 없고
타성도 없으며,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도 없고 지금 곧 멸하는
것도 없습니다.
가섭이여,
능히 여덟 가지 잘못을 버리지 않고 여덟 가지 선정에 들어 탐
착심을 없애고, 그릇된 생각으로 정법에 들며, 한번 먹음으로써
일체에 베풀고, 제불과 모든 현성을 공양한 연후에 먹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먹는 이는 번뇌가 없으나 번뇌를 여읜 것
도 아니고, 선정에 든 것도 아니고 선정을 일으킨 것도 아닙니
다. 세간에 머무는 것도 아니고 열반에 머무는 것도 아닙니다.
그 음식을 보시하는 자에게는 큰 복도 작은 복도 돌아갈 것이 없
고, 이익을 얻는 일도 손해를 보는 일도 없습니다. 그리 하여야만
바르게 불도에 들어 소승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섭이여,
만약 이와 같이 먹는다면 사람들의 베풂을 헛되게 하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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