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고경 - 2018년 12월호 Vol.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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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 표현은 스님의 법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펄펄 끓는 용광로에 차디찬 맑은 물이 넘쳐흘러,(중략) 장엄한 법당에는
3)
아멘 소리 진동하고 화려한 교회에는 염불소리 요란하니”
“귀머거리가 우레 소리를 듣고, 장님이 구름 속 번갯불을 보고, 앉은뱅
4)
이가 일어나 너울너울 춤을 춥니다.”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
하합니다. 술집에서 웃음 파는 엄숙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
니 축하합니다.(중략)” 5)
역설은 겉으로 보기엔 모순된 듯 보이나 깊이 들여다보면 어떤 진리를
담고 있는 표현법이다. 특히 통념을 뒤집는 모순을 통해 상대방의 인식에
충격을 줌으로써 심오한 깨달음이나 상식을 초월한 진리를 나타내는 효과
를 지니고 있어 예로부터 선사들이 선시를 통해 자주 쓰는 문학적 기교이
기도 하다. 성철 스님의 법어는 통념과 상식을 뒤집는 역설을 통해 정법을
추구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숨어있는 진리를 확연히 드러내는 효과를 나
타내고 있다.
그러나 한국불교는 지금 여전히 기복과 사법邪法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 사회 역시 신분적 불평등은 물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모든 상대를 존경하며 받들어 모셔야 한다’는
스님의 법어가 무색하리만치 서로에 대한 신뢰와 배려가 너무 부족하다.
불교는 과거 재래 인도사회에서 낡은 관념의 탈피를 주장하며 출현했
3) 1986년 1월1일 신년법어.
4) 1993년 1월1일 신년법어.
5) 1986년 음 4월8일 봉축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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