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8 - 고경 - 2018년 12월호 Vol.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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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보내면서 가만 생각하니, 허공에 집을 지은 것 같다. 공수래고수
거空手來空手去, 즉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세상에 나올 때도 그랬
지만, 올해도 내 자신이 1분 1초를 가져온 것이 없다. 또, 365일 매 순간
움직이면서 차지한 ‘그 많은 공간’도 마찬가지다. 세상과 작별할 때까지 계
속될 것이다. 그러나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시간’과 ‘광대무변의 공간’속에서
도 ‘문門’이 있다. 그런데 집안에 들어가면 터 비고 고요하다. 다만 밝은 달
과 맑은 바람이 흰 구름을 쓸어갈 뿐이다. 우주가 한 지붕에서 ‘있는 그대
로’ 순환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또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오직 정진하는 씨를 뿌리고, 대자유의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다.
꽃씨 하나/얻으려고 일 년/
그/꽃/보려고/다시 일 년
-김일로(1911~1984)의 송산하頌山下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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