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고경 - 2019년 1월호 Vol.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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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 흙덩이가 부서지며 벌레가 나오자 까마귀가 벌레를 쪼아 먹고, 또
           지렁이가 나오자 개구리가 지렁이를, 뱀이 개구리를, 공작이 뱀을, 매가
           공작을, 독수리가 매를 잡아먹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약육강식의 광경을

           본 태자는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어 고요하게 다리를 맺고

           앉아 과거의 여러 겁 동안 많은 생을 살면서 습관적으로 실천했던 선정禪
           定에 들었다.
             시간이 흐르자 다른 나무의 그늘은 변하고 있는데 태자가 앉아 있는 잠

           부 나무 그늘만은 정오가 지났는데도 태자가 명상에 잠길 수 있도록 머리

           위에 둥근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반왕은 자신의 눈으로 이 광경을 보
           고는 감탄하였다.
             잠부 나무 아래에서 첫 선정에 든 태자를 표현한 불전 미술 가운데 파키

           스탄 페샤와르박물관 소장품인 <사진 1>이 가장 유명하다. 잠부 나무 아래

           에 앉은 인물은 싯다르타 태자로 장신구를 걸치고 두 손을 배 앞에 둔 채
           깊은 선정에 들어 있다. 태자가 앉은 대좌에는 오른쪽 끝에서부터 채찍을
           든 농부와 쟁기질하는 두 마리의 소, 불이 피어오르는 향로, 향로를 향해

           합장하고 서 있는 두 사람, 무릎을 꿇고 합장한 채 아들을 바라보고 있는

           정반왕이 앉아 있다.


             유람과 고뇌 … 아픈 사람을 만나는 싯다르타




             성城 안에서 주로 생활하였던 싯다르타 태자에게 성 바깥으로의 유람은
           가슴 설레는 나들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성 밖으로의 유람은 삶은 고통으
           로 이루어진 또다른 세계라는 것을 경험케 하였다. 불전문학에서는 싯다

           르타 태자가 동남서북 네 문을 통해 밖에서 경험한 일들을 사문유관四門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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