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 - 고경 - 2019년 1월호 Vol.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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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법란시대에 배포가 없었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배포가 크다’라고 했을 때 그 사전적 의미는 담력과 도량이 크다는 뜻이
다. 담력은 또 겁이 없고 용감한 기운을 말한다. 옛말에 ‘간 떨어지겠다’ 거
나 ‘간이 콩알만 해졌다’ 또 ‘쓸개 빠졌다’, ‘담력이 크다, 작다’ 등은 오장육
부의 기능 중 ‘간과 담’을 빗대어 마음의 상태를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말이
다. 간과 담은 서로 음과 양의 부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기치유학氣治
癒學에서는 결단력과 줏대, 그리고 용기를 나타낸다고 가르치고 있다. 생
리학적으로도 담낭이 허약하면 얼굴이 창백해지고 몸은 무기력해진다. 다
시 말해 의욕이 저하되고 어깨는 늘 처져 있으며 움직이기 싫어하므로 이
런 사람들과는 어떤 일도 함께 도모할 수 없다.
출가 수행자들로선 이런 모습은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 몸이 허약한 사
람은 사시사철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특히 겨울과 여름철을 맞
아 공동 수행이 이루어지는 안거기간에 건강을 지키지 못하면 공부를 제
대로 해내기란 어렵다. 무엇보다 수행에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게 되므로
다른 수행자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선객禪客을 지도하
는 큰스님들은 사시사철 출가 수행자들의 눈이 살아 있도록 항상 경책警
策한다.
설봉 화상이 이 내용을 수시하던 때가 한창 무더운 날씨가 기승을 부리
고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모두들 더운 날씨 탓에 맥이 탁 풀려 수행
분위기가 허술해지자 용기를 북돋우고 정진 분위기를 다잡고자 이 공안을
제시했으리란 추측이다. 전쟁터도 아닌데 설봉 화상은 ‘북을 둥둥 울리며
찾으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왜 설봉 화상은 ‘북을 치며’라고 강조했을까?
전쟁 상황에서 북소리는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는 역할을 한다. 설봉 화상
은 느슨해진 수행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이런 표현을 쓴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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