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 - 고경 - 2019년 3월호 Vol.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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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고 생각한다. 나이 많고 지위가 높으면 훈계할 수 있는 사람, 젊고 지
위가 낮은 사람은 순종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은 비단 꼰대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꼰대의 역할을 하는
설자說者는 종교지도자가 될 수 있고, 누군가를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사
람들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주로 설자說者의 역할을 맡는다. 반
면 듣는 자는 설법이나 강론을 듣는 평신도, 가르침을 받는 학생 등 설자
의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과 젊은이, 종교 지도
자와 신도,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불가역적으로 고정된 것은 아니
다. 특정 영역에 있어서는 가르치는 자가 우월할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가르치는 자가 못한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라는 구별은 고정불변의 관계가 아니
다. 본질적으로 보면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는 동등하며, 이 둘의 관계
가 오히려 역전되기도 한다. 이처럼 설자와 청자의 권위적 관계를 해체하
고 존재의 평등성을 설파하는 교설이 화엄의 ‘설청전수說聽全收’라는 가르
침이다. 모든 경전에서 설하는 주체는 마땅히 부처님이고, 듣는 객체는
중생이다. 그런 관계를 놓고 본다면 불교에서 설자는 부처님이고 청자는
중생이다. 여기서 설자에게 모든 권위와 무게가 실리고 청자는 수동적 위
치에 서게 된다. 그런데 설청전수는 ‘설하는 자와 듣는 자를 모두 거두어
들인다’고 한다.
‘설함[설說]’과 ‘들음[청聽]’이라는 행위에서 설함이란 주체적 행위자인 능
能을 말하고, 들음이란 수동적 행위자인 소所를 의미한다. 따라서 능能은
곧 본체[체體]가 되고, 소所는 작용[용用]이라는 관계가 성립된다. 결국 ‘설
함과 들음을 모두 거두어들인다’는 것은 설과 청, 체와 용, 능과 소가 대
립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즉상입相卽相入하고 상호 전환되는 관계임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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