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고경 - 2019년 4월호 Vol.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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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녘 하늘 아침 해가 도동천일괘서봉到東天日掛西峯
서쪽 봉우리에 걸려 있네.
진정한 수행자는 머무름이 없는 진리에 머문다. 최상의 길지라도 그 자
리만 탐내고 그냥 머문다면 끝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다. 물 긷고 나무
하되 지음에 지음 없으면 한가하고, 함이 없되 하지 않음도 없는 수행자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선사의 이러한 수행은 날마다 변함없이 아침
해가 서산에 질 때까지 소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었다는 언급에서 잘 표
출되고 있다. 집착 없는 무심의 무주대無住臺 수행이 선명히 그려져 있다.
이 산 속의 빼어난 풍광은 산간승개다山間勝槩多
세속의 즐거움보다 앞서네. 준의인간락准擬人間樂
솔바람은 비파소리 같고 송풍금슬성松風琴瑟聲
단풍 숲은 기막힌 비단색이네. 풍림기라색楓林綺羅色
홀로 앉아 보고 듣는 것으로 족하니 독좌족견문獨坐足見聞
얻고 잃는 것 관심 없네. 불요지득실不要知得失
누군가 날 찾아와 적막함을 위로하면 인래위적요人來慰寂寥
그의 소심함에 웃음나리라. 아소거착착我笑渠齪齪
청매의 자연교감의 서정이 잘 그려지고 있다. 산 속의 빼어난 풍광이 세
속의 즐거움 못지않게 아주 다양하고 넉넉함을 읊고 있다. 솔바람 소리가
‘우우’내는 비파소리와 같고, 가을 단풍 숲은 기막힌 비단색 같아, 이 경물
을 홀로 앉아 듣고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넉넉한 살림이라 생각하는 선사
이다. 더 이상 바랄게 없는 자족의 산중생활에 누군가가 찾아와 적막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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