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6 - 고경 - 2020년 4월호 Vol.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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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행하라[朕所至願, 在於燃燈八關, 燃燈所以事佛, 八關所以事天靈及五
嶽名山大川龍神也. 後世姦臣建白加減者, 切宜禁止. 吾亦當初誓心, 會日不
犯國忌, 君臣同樂, 宜當敬依行之].”
태조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연등회와 팔관회가 간단없이 행해지
기를 원했다. 고려 시대 왕실이 주관한 불교 행사에는 연등회, 팔관회뿐
아니라 공덕재, 수륙재, 무차회 등이 있었다. 민심 규합 및 사회적 통합
이라는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폐단이 만만치 않았다.
최승로(崔承老, 927-989)는 성종 1년(982) 「시무 28조」에서 이러한 의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최승로는 당시 정광행선관어사상주국正匡行選官御事上
柱國이라는 관직을 맡고 있었다. 982년 6월에 성왕이 경관 5품 이상의 관
직을 맡은 신하들에게 시정 득실을 논하는 봉사封事를 올리게 하자, 최승
로는 「오조치적평五朝治績評」 및 「시무 28조」를 지어 올렸다. 「시무 28조」의
제 2, 4, 6, 8, 10, 16, 18조 등은 왕실의 지나친 불교 비호와 불교 행사의
폐단을 지적하고 있다. 「시무 28조」는 정책 건의서로, 필요한 정치 개혁
을 28개의 조목으로 나누어 기술했다. 「시무 28조」 중 제2조에서 지적한
공덕재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듣건대 성상께서 공덕재를 베풀기 위해 혹은 몸소 차를 갈고
차 싹을 연마한다고 하오니 신은 성체가 피로해지실까 하여 매
우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이 폐단은 광종 때부터 시작된 것이니
남을 헐뜯는 말을 믿고 죄 없는 사람을 많이 죽이고는, 불교의
인과응보설에 미혹되어 죄업을 없애고자 백성의 고혈을 짜내어
불사를 일으킨 것이 많았습니다[竊聞聖上 爲功德齋 或親碾茶 或親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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