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9 - 고경 - 2020년 4월호 Vol. 84
P. 69

위해서는 교전敎典이 중요성을 반영한 종파이다.

              법안종의 초조 문익 선사文益禪師는 강서 임천
            승수원에서 교화를 폈는데, 오대 말五代末 남당

            (南唐, 937-976)왕 이변(李昪, 889-943)이 그를 흠모
            하여 정혜 선사淨慧禪師라는 호를 내린 후, 그를

            청량산으로 모심에 따라 교세가 확산하였는데,
            청량산이 법안종 교화의 중심지가 된 것은 이로                    차의 어린 싹.

            부터다. 그런데 10세기경 승원에서는 차를 마시
            는 일상이 보편화 되었다. 그러므로 문익 선사의 초기 제자인 고려 출신

            승려 혜거慧炬도 차를 마시며 수행하는 풍습에 익숙했을 것이라 여겨진
            다. 이로 인해 그의 귀국은 고려 왕실에 차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고려에서 법안종의 번성은 혜거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정보는 『경덕전등록』에서 확인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는) 고려 도봉산 법안종의 국사이다. 당말 오대 때의 승려인

                데, 생몰연대는 상세하지 않다. 중국에 와서 법안 문익을 따라
                수행하여 득도한 후, 고려의 국왕이 사신을 파견하여 청하므로
                마침내 고려로 귀국하였다. 이후 중국의 법안종은 점차 쇠락하

                여 미미해졌지만, 고려의 법안종은 도리어 흥성하였으니 모두

                혜거의 영향 때문이다[高麗道峰山法眼宗之国師 唐末五代时之僧 生卒年
                不詳 來我国跟随法眼文益修行而得悟 后高麗国主遣使來請 遂回故地 以后我

                国法眼宗 雖漸衰微 而高麗法眼宗却興盛一时 皆慧炬影響所致].”





                                                                        67
   64   65   66   67   68   69   70   71   72   73   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