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9 - 고경 - 2020년 7월호 Vol. 87
P. 159
유假有가 아닌 외경은 존재하므로, 경境이 없는 것으로는 변하지 않는다.”
고 설명했다. [장꺄가 보기에] 따라서 그 의미는 바로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
다. 각자 스스로 파악한 법성法性의 색色의 외경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증
익되지 않은 사물의 외경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설명하는 것은
『중관심론』의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청변 논사가 외경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외경에 ‘실제로 존재한다’[實有]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
문이다. 『사택염』에서 “법성法性의 색色의 외경外境이 존재하기 때문에”라고
한 것 역시 식識 이외 다른 실체적實體的인 외경이 존재한다는 것이 성립되
기 때문이지, 법성法性의 외경이 성립한다든가, 실체적인 외경이 진실임을
주장하는 그 어느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택염』에서 “문자와 의미가 일
치하는 자성이 아닌 사물은 어떤 것이라도 그것이 존재하기에”라고 말한
것 역시 증익된 자성自性이 공空한 외경이 존재한다는 것이지, 유식파가 주
74)
장하는 것처럼 희론戱論을 떠난 사물 에 대해 [자성自性을] 파악하려는 것
은 아니다.
74) brjod du med pa’i dngos po.
장꺄롤뻬돌제 lcang skya rol pa’i rdo rje. 제3세 장꺄 활불을 말한다. 생졸년은 1717-1786. 4세 때 제
3세 장꺄 활불(活佛, 윤회전승자)로 인정받아 암도 지방의 곤룽 사원[dgon lung dgon pa, 중국 칭하이셩靑海省 후주셴
互助縣에 위치]에 들어갔다. 8세 때인 1724년 청나라 옹정제(재위 1722-1735)의 초청을 받아 북경에 도착, 후
일의 건륭제와 함께 공부한다. 당시 장꺄는 티베트어·만주어·중국어·몽고어·겔룩파의 교리 등을
배웠다. 1734년에 옹정제로부터 ‘관정보선광혜대국사灌頂普善廣慧慈大國師’라는 칭호를 받는다. 장꺄의 업
적 가운데 특기할 것은 건륭제 때인 1741-1742년 티베트어 대장경 땐규르[논소부] 전부를 몽고어로 번역
한 점. 강희제 당시 티베트어 대장경 깐규르[불설부]가 이미 몽고어로 번역되어 있었기에, 장꺄가 땐규르
를 몽고어로 번역한 후 몽고어 대장경이 완비됐다. 게다가 1772-1779년 장꺄는 티베트어 대장경 깐규
르 전부를 만주어로 옮겼다. 그는 『능엄경』을 한문에서 티베트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내·외전에 통달
한 그가 1736년부터 1746년까지 10년에 걸쳐 쓴 책이 바로 이 『교의론』이다. 그는 18세기 중후반의 티
베트불교를 대표하는 가장 뛰어난 학승이자 수행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