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0 - 고경 - 2020년 10월호 Vol.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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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는 고난을 통하지 않은 생명이 없듯, 길흉이 다른 차원에서 따로 놀지
           않습니다.
             이런 해석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최소한의 자료는 필요합니다. 아무리

           작품이 작가 손을 떠나면 보는 이의 시선에 맡겨진다 하지만 지나친 과장

           은 오히려 그림을 통해 참된 진리와 생명을 체험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
           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서론을 길게 쓰는 것은 김호석 화백의 그림과 삶도 위와 같은 경

           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화백의 그림은 쉬운 듯 어렵습니다. 현대 많은 화가

           들의 그림은 거의 첩보전의 암호풀이 수준을 요합니다만, 화백의 그림은
           특별히 어려울 것이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일상의 가까운 소재들을 잡
           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그 앞에 서면 막막함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확실히 있습니다. 그 이유는 화백의 생각과 마음이 은유, 도치, 풍자, 역풍

           자로 그 안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법적 문제뿐만 아니라 화백은
           매일 아침 묵상으로 하루를 열고, 그림 이전 삶과 정신을 자신의 어떤 그
           림들보다 소중히 여깁니다. 그래서 삶의 자세, 삶의 양식 이런 것들에 그림

           이상의 정성을 들입니다. 값비싼 옷과 먹거리를 피하고, 쓸데없는 외출은 하

           지 않고, 술 담배를 멀리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의 핵심을 세상과 세상 사람
           들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망설임 없이 말합니다. 그의 그림에는 이런
           삶이 담겨있고, 이 삶을 이해하는 만큼 그의 그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책, 즉 김호석 화백의 『모든 벽은 문이다』(선善출판사, 2016, 사진 1)는 이

           런 의미에서 화백의 그림을 제대로 보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특히 인물
           화, 스님들의 진영 중심의 이 책은 무엇보다 화가의 정신을 아는데 자신이
           직접 쓴 책이기에 더욱 소중합니다. 또한 작품 한 점에 기울이는 그의 정

           성은 거의 종교에 가깝습니다. 이런 정신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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