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1 - 고경 - 2020년 10월호 Vol.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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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들 중에서도 성철 스님(사진 2)의 그림들입니다.
‘세수하는 성철 스님’은 이런 배경 없이 본다면, 그저 가볍게, 그 도와 덕
높은 스님도 이런 평범한 면이 있다는 것을 잘 포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해석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작가의 글은 거기서 멈출 수 없게
합니다. 몸 없는 성철 스님의 그림도 그렇습니다. 밖이 아닌 속이 중요하다
는 정도로 볼 수도 있지만 화가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그 이상의 무엇이
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불교 정진의 길에서 이 시대에는 아직 성철이란
산을 넘을 만한 인물은 없는 듯합니다. 사실 몸 없는 옷뿐임에도 마치 산
을 마주 한 듯 묵직합니다. 하지만 불교 깨침의 길에서 이처럼 방해되는 일
도 없을 것입니다. 성철이란 산 앞에 막힌다면 그것은 깨침과는 반대의 길
일 터이니 말입니다. 성철도 부처도 훨훨 털고 자신의 길을 가라는 성철 스
님의 손짓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세숫대야 물속에서도 자
신의 모습을 봅니다. 구름도 와서 놀고 옆에 선 나무의 푸른 잎들도 성철
스님이랑 함께 놀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성철이기 때문이지 다른 무슨 뜻
이 있지 않습니다. 컴컴한 배경과 옷차림의 성철 스님은 또 어떻습니까? 어
둠도 묻지 못할 스님의 빛이 어둠이라 더 형형하게 빛납니다.
성철 스님에 관한 논문 백 권을 읽는 것보다 화백의 그림은 성철 스님을
더 가깝게 느끼게 해줍니다. 한 사람을 모델로 30편을 그렸으니 아마 화백
의 그림 중 가장 많은 숫자일 것입니다. 그만큼 성철 스님은 화백에게도 많
은 영향을 미쳤음이 틀림없습니다. 특히 다비식은 그 앞에 서면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그 수많은 그리움의 물결은 한 사람 성철을 통해 하나의 강
물을 이룹니다. 어쩌면 원래 흐르던 강물이 성철과 수많은 이들의 그리움
이 만남으로써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지도 모릅니다. 그 강물이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옴에 그리움은 더욱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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