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6 - 고경 - 2020년 10월호 Vol.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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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진다. 슈코가 원오묵적을 하나의 공안으로서 생각하고 다실의 도코노마에
걸고 차를 하였다면 이것을 조주(趙州, 778-897) 선사의 끽다거喫茶去로부터
내려오는 공안선다公案禪茶의 새로운 형태, 즉 선다도라고 할 수 있겠다. 바
로 여기에 슈코를 선다도의 개산이라 일컫는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때문에
슈코의 이러한 다도의 모습을 보고 ‘슈코의 다도 속에는 불법이 있다’라고도
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대의 다도에서는 도코노마의 묵적이 하나의 정
해진 연출로서 그 깊은 의미는 잊혀지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은각사 … 최고 권력자가 다도를 배우기 시작하다 은각사(銀閣寺,
1482-1490)는 금각사金閣寺와 나란히 교토 관광의 필수 코스로 벚꽃과 단
풍이 아름다운 철학의 길 옆에 위치한다(사진 3). 은각사의 주인인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 1436-1490)는 문화 예술에 심취한 당대 최고 권력자였
다. 그러한 그가 노년에 모든 문화와 예술 놀이에 식상해 하고 마지막으로
즐거움을 찾아 정착한 것이 다도였다. 슈코가 바로 그의 다도 스승이 되었
는데 이는 일본의 권력자들이 다도를 배우는 효시가 되었다. 이후 오다 노
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센리큐에게 다도를 배
웠고 에도江戸 막부가 끝나는 메이지 이전까지 도쿠가와徳川 가문의 쇼군
과 다이묘大名들은 다도를 배웠던 것이다.
이 때 요시마사에게 슈코를 소개한 인물이 노아미(能阿弥, 1397-1471)인
데 그는 요시마사의 미술품 등을 관장하며 문화예술에 관해서는 당대 최
고의 안목을 가진 전문직 승려였다. 그는 슈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시마
사에게 간곡히 추천하였다.
“슈코의 다도는 눈 내리는 겨울에는 초암차의 정취를 즐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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