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고경 - 2020년 10월호 Vol.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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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일시에 나타나서 억천만 겁이 다하도록 설명하려 해
            도 이 물건을 털끝만치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가 깨쳐서 쓸 따름
            이요, 남에게 설명도 못하고 전할 수도 없다.

              이 물건을 깨친 사람은 부처라 하여, 생사고生死苦를 영원히 벗어나서 미

            래가 다하도록 자유자재한 것이다. 이 물건을 깨치지 못한 중생들은 항상
                                           1)
            생사바다에 헤매어 사생육도四生六途 에 윤회하면서 억천만겁토록 고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중생이라도 다 이 물건을 가지고 있다. 깨

            친 부처나 깨치지 못한 조그마한 벌레까지도 똑같이 가지고 있다. 다른 것

            은, 이 물건을 깨쳤느냐 못 깨쳤느냐에 있다. 석가와 달마도 이 물건은 눈
            을 들고 보지도 못하고, 입을 열어 설명하지도 못한다. 이 물건을 보려고
            하면 석가도 눈이 멀고 달마도 눈이 먼다. 또 이 물건을 설명하려고 하면

            부처와 조사가 다 벙어리가 되는 것이다. 오직 깨쳐서 자유자재하게 쓸 따

            름이다.
              그러므로 고인古人이 말씀하기를, ‘대장경은 모두 고름 닦아 버린 헌 종
            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말하노니 “팔만대장경으로 사람을 살리려는

            것은 비상砒霜으로 사람을 살리려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경전 가운데도

            소승小乘과 대승大乘이 있으니, 대승경에서는 말하기를, “설사 비상을 사람
            에게 먹일지언정 소승경법小乘經法으로써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하였
            다. 그러나 대승경 역시 비상인 줄 왜 몰랐을까? 알면서도 부득이한 것이

            다. 그러니 여기에서 크게 정신 차려야 한다.







            1)  사생四生이란 태란습화胎卵濕化로 생명이 태어나는 네 가지 유형을 말하며, 육도六途란 지옥, 악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을 말하는 것으로 중생이 윤회하는 여섯 갈래의 세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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