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고경 - 2020년 10월호 Vol.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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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이 한 물건만 믿는 것을 바른 신심信心이라 한다. 석가도 쓸 데 없
고 달마도 쓸 데 없다. 팔만장경八萬藏經이란 다 무슨 잔소리인가? 오로지
이 한 물건만 믿고 이것 깨치는 공부만 할 따름이요, 그 외에는 전부 외도
며 마구니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 염불 공덕으로 죽어 극락세계에 가서
말할 수 없는 쾌락을 받는데, 나는 이 한 물건 찾는 공부를 하다가 잘못되
어 지옥에 떨어져 억천만겁토록 무한한 고통을 받더라도 조금도 후회하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오직 이 공부를 성취하고야 만다!” 이러한 결심
이 아니면 도저히 이 공부는 성취하지 못한다. 고인은 말씀하기를, “사람
을 죽이면서도 눈 한 번 깜짝이지 않는 사람이라야 공부를 성취한다.”고
하였다. 나는 말하노니 “청상과부가 외동아들이 벼락을 맞아 죽어도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을 만한 무서운 생각이 아니면 절대로 이 공부 할 생각
을 말아라.”고 하겠다.
천 근을 들려면 천 근을 들 힘이 필요하고, 만 근을 들려면 만 근을 들
힘이 필요하다. 열 근도 못 들 힘을 가지고 천 근 만 근을 들려면,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면 미친 사람일 것이다. 힘이 부족하면 하루바삐 힘
을 길러야 한다. 자기를 낳아 길러 준 가장 은혜 깊은 부모가 굶어서 길바
닥에 엎어져 죽더라도 눈 한 번 거들떠보지 않는 무서운 마음, 이것이 고
인의 결심이다. 제왕이 스승으로 모시려 하여도 목을 베이면 베였지 절대
로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 고인의 지조이다.
사해四海의 부귀는 풀잎 끝의 이슬방울이요, 만승의 천자는 진흙 위의
똥덩이라는 이런 생각, 이런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야 꿈결 같은 세상 영화
를 벗어나 영원불멸한 행복의 길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털끝만한 이해
로써 칼부림이 나는, 소위 지금의 공부인工夫人과는 하늘과 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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