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2 - 고경 - 2020년 11월호 Vol.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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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우리를 원수로 삼아 남의 땅과 인접해 있으면서 사람을 괴롭
                히기 일쑤이고, 남의 양식을 빼앗으면서 사람을 해치는 것을 즐
                겁게 여기며, 심지어 나이든 여자와 어린 아이들을 용서없이 죽

                이고, 새끼 밴 망아지와 젖먹이 송아지를 남김없이 도살하며, 불

                사佛寺를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기도 하고, 범서梵書를 찢어서 뒷
                간에 버리기도 하니, 이것이 이른바 짐승의 마음이지 어찌 사람
                의 정情이겠습니까. …(중략) … 엎드려 원하건대 신위의 도움을

                내리고 사기士氣의 앙양을 더하여 왕의 군사는 마치 땅을 진동

                하는 빠른 우레처럼 가는 곳마다 떨치고, 오랑캐 종자는 마치
                강물에 던지는 횃불처럼 저절로 종식되기를 바랍니다.” (『동국이
                상국집』 권41).




             앞의 기록은 고려 때 거란군이 침입하자 거란군을 물리치기 위해 제석
           천에게 올리는 기원을 담은 기도문이다. 고려시대에는 궁에 내제석원內帝
           釋院과 외제석원外帝釋院을 두었던 사실을 통해 제석천에 관한 신앙이 성행

           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고려불화 중에는 왕의 모습으로 그려진 제

           석천도가 전하고 있어 왕실과 제석천 신앙과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


             토함산 석굴의 범천과 제석천




             경주 토함산 석굴의 원형으로 이루어진 중심 공간에는 석가여래의 주
           위를 11면관음보살상, 10대제자상, 문수·보현보살상, 제석천·범천상이 감
           싸고 있다. 중심 공간인 주실主室은 불·보살·나한이 머무는 공간이고 주

           실 앞의 전실前室과 주실로 이어지는 통로에는 팔부중· 금강역사·사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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