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7 - 고경 - 2020년 11월호 Vol.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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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함산 석굴 범천상의 왼손의 지물인 정병淨甁은 『다라니집경』에서 언급
된 조관澡罐의 다른 표현으로 인도 수행자의 지물인 물병에서 비롯된 도상
이다. 제석천이 들고 있는 끝이 다섯 갈래로 된 금강저金剛杵는 『다라니집
경』의 발절라를 의미하며 벼락을 형상화한 것이다. 옛 인도 신화에서부터
제석천이 지녔던 강력한 무기를 상징하며, 후대에는 수행자가 지녀야 할 수
행법구로 정착되는데 고려시대 나한상 가운데는 금강령과 함께 지물로 금
강저를 들고 있는 예를 볼 수 있다.
오대산 상원사 문수전의 제석천상
조선 세조의 원찰인 오대산 상원사 문수전에는 1466년에 조성된 문수
동자상과 함께 왕의 모습을 한 제석천상이 모셔져 있다(사진 3). 1645년에
조성된 상원사 목조 제석천상은 보관을 쓰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다. 소매가 넓은 옷을 입고 장신구가 화려하게 치장된 모습은 왕을 보는
듯하다.
상원사 문수전의 목조 제석천상은 고려시대에 제작되어 현재 일본 성택
원聖澤院에 소장된 제석천도와 비슷하다. 1466년에 세조의 딸 의숙 공주가
그의 남편 정현조와 함께 조성한 문수 동자상 발원문에 의하면 ‘석가여래,
약사여래, 아미타불, 문수 보살, 보현 보살, 미륵 보살, 관음 보살, 지장 보
살, 16나한, 천제석왕天帝釋王’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
서 세조의 원찰인 상원사에는 1466년에 제석천상을 조성했으나 어느 때인
지 없어진 후 1645년에 현재의 제석천상을 다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상원사 목조 제석천상은 조성발원문에 의하면 인조의 아들 소현 세자
(1612-1645)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소현 세자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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