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2 - 고경 - 2021년 1월호 Vol.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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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西晉의 명승 도안道安은 안세고를 높이 평가하여 그가 번역한 경전
           들에 서문을 찬술하고 있는데, 『안반수의경』의 서문에서는 “옛 학문을 널
           리 배웠고, 특히 아비담阿毘曇에 뛰어나 그 역출譯出한 경전에 선수禪數에

                                  6)
           관련된 것이 가장 많았다.” 라고 평가하고, 『음지입경』의 서문에서는 안세
                                                    7)
           고의 역경을 “오직 선관禪觀을 펴는 데 힘썼다.” 라고 하며, 다시 『십이문
                                                                8)
           경十二門經』의 서문에서는 “안세고는 선수학禪數學을 잘 열었다.” 라고 평가
           하고 있다.

             양대梁代 혜교慧皎의 『고승전高僧傳』에 “처음에는 대승의 경전이 아직 널

           리 퍼지지 않았고, 선수禪數의 학이 매우 성행하였다.” 라는 문구가 보이는
                                                        9)
           것처럼 초기 중국불교는 바로 안세고의 역경으로부터 비롯된 ‘선수학’이 불
           교의 주류를 형성하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조위曹魏의 왕필王弼이 반

           야학을 원용하여 ‘현학’을 제시하고, 이후 배위裴頠, 곽상郭象 등을 통하여

           현학이 시대사조時代思潮를 형성하면서 점차 대중들은 반야학으로 관심이
           전환된다. 특히 서진시기에 반야부 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대승경전들이
           대량으로 번역되면서 ‘격의불교格義佛敎’가 출현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안

           세고 계통의 ‘선수학’은 그 세력을 잃게 되었고, 남북조南北朝 시기에 이르

           러서는 ‘선수학’과 대승의 선관禪觀이 결합되어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정학定學’이다. 그러나 ‘선수학’은 중국불교의 출발점이고, 이후 전개되는
           중국선의 흐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6) [梁]僧祐撰, 『出三藏記集』(大正藏55, 43c), “博學稽古, 特專阿毘曇學, 其所出經, 禪數最悉.”
           7) 앞의 책, 6卷(大正藏55, 44c), “其所敷宣, 專務禪觀.”
           8) 앞의 책(大正藏55, 46a), “安世高善開禪數.”
           9) [梁]慧皎, 『高僧傳』卷1(大正藏50, 328b), “先是大乘之典未廣, 禪數之學甚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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