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0 - 고경 - 2021년 1월호 Vol.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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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삼 개월을 결재潔齋하기를 맹세하였다.” 라는 기록이다. 이는 『후한
서後漢書』 「초왕영전楚王英傳」에 실려 있는 기록을 『불조통기佛祖統紀』에서 전
재한 것인데, 중국의 역사서에 나타난 최초의 불교와 관련된 기록이다. 동
한의 황실에서는 이러한 일종의 정치적 실험을 80여 년을 진행한 이후에
서야 환제에 이르러 역경을 국가적인 사업으로 시작했던 것이라고 하겠다.
앞에서 언급한 초왕 영의 기사[永平 8年(65)]와 환제의 역경[建和 元年(147)]은
82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파불교의 교학과 근본경전을 전공
으로 하는 안세고와 대승경전에 뛰어난 지루가참을 동시에 초빙하여 이른
바 소승과 대승을 함께 역출하고 있다는 점은 바로 황실에서 불교의 흐름
에 대하여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동한 시기에는 안세고가 번역한 아비담 교학과 관련된 경전이 주로 유행
하였다. 물론 지루가참이 번역한 중국 최초의 반야부 경전인 『도행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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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道行般若經』 은 이후 왕필王弼이 현학玄學을 제시하고 중국사상계에 최초
로 ‘체體·용用’, ‘본本·말末’ 등의 개념이 출현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
하였지만, 이는 조금 후대의 일이다. 초기 중국불교는 안세고가 번역한 경
전을 근거로 하여 ‘선학禪學’이 나타났으며, 이러한 선학을 ‘선수학禪數學’이
라고 칭한다.
안세고 계통의 선수학이 유행하였던 원인에는 당시의 시대상황과 밀접
한 관계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동한은 서한을 계승하여 유학
을 통치이념으로 하였지만, 당시의 유학은 동중서董仲舒가 제창한 신비적
인 ‘천인감응天人感應’의 사상으로 인하여 점차 종교화되었고, 그에 따라 도
2) [宋]志磐, 『佛祖統紀』(『大正藏』49, 330a), “誦黃老之微言, 尙浮屠之仁祠, 絜齋三月, 與神爲誓.”
3) 이 경전은 이후 지겸支謙에 의하여 『대명도무극경大明度無極經』, 구마라집鳩摩羅什에 의하여 『마하반야바라
밀경摩訶般若波羅蜜經』(10권본, 小品般若)로 다시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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