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5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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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이 어찌 도를 논할 수 있는가?” 라는 당시 선학을 비판하는 가운데
달마의 선사상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후대에 불타-승조계의 소림사는 오히려 달마 선사가 주석한 사찰로 알
려지게 된다. 그러나 당시의 여러 자료를 고찰하면 달마는 소림사에 다녀
간 흔적이 없으며, 후대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호적胡適의 『보리
달마고菩提達摩考』에서 “보리달마의 소림사 면벽面壁 고사는 바로 후대 사
람들이 소림사 불타의 고사를 달마의 고사로 혼동한 것이다.”라고 지적하
는 바와 같다. 달마가 소림사에서 주석했다는 것은 아마도 ‘법의지쟁法義
之爭’을 통하여 달마-혜가계가 불타-승조계를 사상적으로 대체했다는 상
징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조의 선학
은 바로 안세고安世高로부터 비롯된 선수학의 전통을 계승하여 대승의 선
관禪觀을 더한 ‘정학’이 주류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학은 중국선
사상의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단계를 담당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17) 앞의 책(大正藏50, 596c), “眞妄相迷卒難通曉. 若知惟心妄境不結. 返執前境非心所行, 如此胥徒安可論
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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