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0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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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를 돕는” 기능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여 완벽한 정교政敎분리를 유지하
          고 있었고, 이는 황제들이 모두 불교에 귀의하는 남조에 이르기까지 지속
          되었다. 그러나 북조는 『위서魏書』 「석로지釋老志」에 “태조는 밝고 뛰어나 불

          도佛道를 좋아하시니, 곧 지금의 여래如來와 같다. 따라서 사문은 마땅히

                             1)
          예의를 다하여야 한다.” 라고 하여 황제를 부처님의 화신으로 대하고 있음
          을 알 수 있다. 더욱이 북위北魏가 439년 북방을 통일하고 ‘승관제도僧官制
          度’를 확립시키면서 불교를 황권 아래 제도적으로 복속시키고 있다. 이러한

          북조의 전통은 이후 수조隋朝에도 계승되며, 특히 수대에서는 승관의 전

          공에 따라 ‘열반중涅槃衆·지론중地論衆·대론중大論衆·강율중講律衆·선문
          중禪門衆’의 ‘오중五衆’으로 분류하고, 이후 다시 ‘이십오중二十五衆’으로 분류
          하는데, 이것이 후에 이십여 종파宗派로 나뉘는 출발점이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른바 ‘삼무일종三武一宗’의 폐불廢佛이 모두 북방에서 발생하는데,

          이는 불교가 황권에 복속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후의 황권이 대
          부분 북방 계열인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불교학에서 남조와 북조의 차별은 흔히 “남의북선南義北禪”이라고 하여

          남방은 의리義理를, 북방은 선정禪定을 중시하는 풍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남북방의 지역적 기질의 차별도 있지만, 서진西晋시기에 북방을 점령
          당하면서 현학을 바탕으로 하는 승려들과 지식인들이 대거 남하하면서 불
          교학을 일으킨 까닭도 있다. 실제로 ‘격의불교’는 본래 북방에서 발생하였

          지만, 강남에서 더욱 유행하였다. 또한 남방에서는 폭넓게 모든 경론을 운

          용하여 ‘의리’를 찾지만, 북방에서는 주로 하나의 경전을 채택하여 깊게 연
          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 역시 북방의 정교관계와도 관련이 있다.




          1) 『魏書』, 「釋老志」, “太祖明睿好道, 卽是當今如來, 沙門宜應盡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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