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1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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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보리달마가 『능가경』을 중심으로 선사상을 펼쳤다는 것도 이러한 북
방불교의 전통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남북의 사상적 경향에 따라 이른바 ‘습선習禪’은 주로 북방에서
더욱 많이 배출되었다. 『고승전』과 『속고승전』의 여러 승려들과 ‘습선편’에
보이는 많은 습선자들 가운데 남방에서 활동한 이도 있지만 대부분 북방
에 속해 있으며, 이들의 전기로부터 대부분 선수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
을 엿볼 수 있으며, 이를 ‘정학定學’이라고 한다. 그들을 모두 논할 수는 없
지만,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이들이 바로 불타(佛陀, 발타跋陀라고도 함)와
승조僧稠, 승실僧實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유행한 ‘정학’의 대
표로서 불타와 승조, 승실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도선道宣의 『속고승전』에 실린 불타의 전기에 따르면, 불타선사는 중국
에 들어와서 북위의 도읍 항안(恒安, 현 山西省 大同)에 이르자 효문제孝文
帝는 그를 존경하여, “따로 선림禪林을 짓고, 돌을 뚫어 감실龕室을 만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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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며, 무리를 모아 정념定念하도록 하였다.” 라고 하였으며, 이후 낙양洛
陽으로 도읍을 옮길 때 불타 선사도 함께 이주하였다. 도읍을 옮긴 2년 후
(太和 20年, 496)에 황제의 명령으로 소실산小室山에 오직 불타 선사만을 위
한 선사를 수조修造하였는데, 이 사찰은 소실산의 산림에 있기 때문에 ‘소
림사少林寺’라고 불리었다. 불타 선사는 절이 완공된 이후, “각지의 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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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명성을 듣고 모여든 자가 항상 수백이었다.” 라고 한다. 이로부터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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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면, 소림사는 불타 선사를 위해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2) [唐]道宣, 『續高僧傳』卷16(大正藏50, 551a), “別設禪林, 鑿石爲龕, 結徒定念.”
3) 앞의 책(大正藏50, 551b), “有勅就少室山爲之造寺. 今之少林是也.”
4) 앞의 책, “四海息心之儔, 聞風響會者, 衆恒數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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