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4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P. 174
는 ‘정학’이 주도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이후 보리달마菩提達摩가
북상하여 활동하였지만, 그다지 황권이나 대중들의 주의를 끌지 못하였
다. 그러나 도선은 습선편의 총론에서 승조와 달마의 사상을 비교하는 다
음과 같은 논술이 있다.
“그 두 종宗을 살펴보면, 바로 대승의 두 궤도이다. 승조는 사념
처四念處를 품었으며, 그의 깨끗한 규범은 숭상할 만하다. 달마의
허종虛宗은 현지玄旨가 그윽하고 깊다. 숭상할 만하다는 것은 곧 실
정과 상황이 쉽게 드러나는 것이고, 그윽하고 깊다는 것은 곧 이성
理性이 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15)
이로부터 보자면, 도선은 달마의 선을 ‘허종’으로 규정하고 승조의 정학
과 비교하는데, 정학이 비교적 쉽게 도달할 수 있는 불법이지만, 허종은
일반적인 ‘이성’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깊은 법이라고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선은 비록 “승조와 승실이 중화의 보름달로 드러나 그 뒤를 이어
전하여 그 근원을 찾을 수 있게 하였다.” 라고 평가하지만, 전체적인 문맥
16)
을 살펴보면 오히려 달마의 허종을 더욱 중시하는 의중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진실과 허망한 것에 서로 현혹되면 갑자기 환히 깨닫기는 어려운 것
이다. 그러나 만약 마음뿐이라는 것을 안다면, 허망한 경계가 맺어지지 않
는다. 반대로 앞의 경계에 집착한다면, 마음작용의 행이 아니니, 이런 무
15) 앞의 책, “觀彼二宗, 卽乘之二軌也. 稠懷念處, 淸範可崇; 摩法虛宗, 玄旨幽賾. 可崇則情事易顯, 幽賾
則理性難通.”
16) 앞의 책(大正藏50, 597b), “稠實標於華望, 貽厥後寄其源可尋.”
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