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3 - 고경 - 2021년 3월호 Vol.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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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도다.” 라고 인정하며 바로 심요深要를 전수하였다고 한다. 승조는
             북위의 효명제孝明帝와 효무제孝武帝, 그리고 북제北齊의 문선제文宣帝로부
             터 적극적인 후원을 받았다. 그에 따라 도선은 그의 전기에서 “부처의 가

                                                    11)
             르침이 동으로 흘러와, 여기에서 성하였구나!” 라고 평가한다.
               또한 승조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승실은 『속고승전』의 전기에 따르면, 어
             려서부터 출가의 뜻을 가지고 있었으며, 26살에 당시 유명한 도원道原을 은
             사로 출가하였다. 북위 효문제 태화(太和; 477~499) 말에 스승을 따라 낙양

             으로 가서 늑나마제勒那摩提 삼장을 만나 선법을 받았다. 승실은 “비록 삼

                                                               12)
             학三學을 통람하였어도, 구차九次에 치우쳐 마음을 새겼다.” 라고 하여 구
             차제정九次第定을 중심으로 선학을 운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승실도 효
             문제로부터 극한 존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북주北周에 이르러서는 삼

             장三藏으로 추대되었다.

               이러한 승조와 승실은 북조에서 선학을 일으킨 핵심적인 인물로서, 도
             선은 이 두 사람에 대하여 “북제北齊의 하북河北에서 승조가 홀로 명망이
             높았고, 북주北周의 관중關中에서 승실이 교화하여 명성이 높이 올랐으

             며” , “그러므로 중원中原의 정원(定苑: 定學)에 강령綱領을 세우고 전개하게
                13)
             한 것이 이 두 현자이고, 그 족적을 이어 등불을 전하며 교화의 흐름이 쉬
                              14)
             지 않게 된 것이다.” 라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도선의 평가는 북조의 선학이 바로 승조와 승실을 중심으로 하






             10) [唐]道宣, 『續高僧傳』卷16(大正藏50, 553b), “自蔥嶺已東, 禪學之最, 汝其人矣.”
             11) 앞의 책(大正藏50, 554b), “佛化東流, 此焉盛矣!”
             12) 앞의 책(大正藏50, 557c), “雖三學通覽, 偏以九次雕心.”
             13) 앞의 책, 卷20(大正藏50, 596c), “高齊河北, 獨盛僧稠; 周化關中, 尊登僧實.”
             14) 앞의 책, “故使中原定苑剖開綱領, 惟此二賢, 接踵傳燈流化靡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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