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1 - 고경 - 2021년 6월호 Vol.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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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을 듣고 초선初選을 치르게 하여 승과에 발탁되었다. 그러나 천하를 주유
하며 조계산 수선사修禪社로 가 보조 국사 지눌知訥 화상을 참방하고, 청평
산에서 진락공眞樂公 이자현李資玄의 유적을 찾다가 김부철金富轍이 지은 ‘문
수원기文殊院記’에서 『수능엄경首楞嚴經』이 불교의 핵심이라는 내용을 읽고
크게 느끼는 바 있어 『능엄경楞嚴經』을 으뜸으로 삼아 능엄선楞嚴禪을 주창
하였다. 부처의 길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서로 자기들의 종취宗趣만 옳다고
대립하는 때에 일심一心을 기본으로 하여 선과 교 어느 쪽에도 치우지지 않
고 그 깨달음을 얻어 천하에 불법을 떨쳤다.
1210년(희종 6)에 연법사演法寺 법회의 법주가 되어 선풍을 떨쳤고, 이후 삼
중대사三重大師와 선사禪師를 거쳐 1215년(고종 2)에 대선사大禪師가 되어 왕
명에 따라 보경사에 주석하였다. 1220년 희종의 넷째 아들인 경지鏡智 선사
의 은사가 되었고, 1221년 『능엄경』을 설한 뒤 팔공산 염불사念佛寺로 옮겨 그
곳에서 입적하였다. 돌아가실 때 삭발 목욕을 하고 승상繩床에 앉아 범패梵
唄를 읊게 했는데, 이때 시자가 임종게臨終偈를 청하니 “이 어리석은 놈아, 내
가 평생 하나의 게송도 지은 적이 없는데, 이제 와서 무슨 게송을 지어달라
는 말이냐!”라고 하고 승상繩床을 세 번 내리치고는 조용히 입적하였다. 국사
로 추증되었고, 시호가 원진이다. 비문의 글씨는 보문각寶文閣 교감校勘인 김
효인金孝印이 썼다. 비는 원진 국사가 입적한 지 3년 후에 세워졌다.
이 시절에는 왕자들까지 삭발하고 출가를 하여 진리를 찾아 나섰다. 대
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 화상도 그러하다. 도대체 무엇을 찾아 왕자의 자
리를 버리고 출세간의 길로 나선 것인가? 『능엄경』은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에 대한 세존과 아난阿難의 문답으로 시작하여 깨달음의 본질과 깨달음으
로 나아가는 과정과 여래장如來藏 사상에 대하여 상세히 설해 놓은 경이다.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가장 쉬운 길이 관음신앙이라면서 능엄다라니楞嚴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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