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6 - 고경 - 2021년 6월호 Vol.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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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원진 국사비.
백제와 고구려로부터 바람 잘 날 없이 군사적 공격을 받고 있었고, 신라는
수나라와 당나라 사신과 조공을 보내 도움을 청하는 형편이었다. 신라는
진평왕 53년 631년에 미녀 두 사람을 사신과 함께 당나라 조정에 바치기도
하였는데, 당 태종 시기 천하의 명재상 위징(魏徵, 580-643)이 인륜에 비추어
볼 때 이 여인들을 돌려보냄이 마땅하다고 직간直諫하여 태종이 가족들과
이별한 채 강제로 보내져온 불쌍한 여인들을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한
일까지 있었다.
보경사는 그 후 고려시대인 1214년 고종(高宗, 1213-1259) 1년에 보경사의 주
지였던 원진 국사圓眞國師 승형(承逈, 1171-1221) 화상이 승방 4동과 정문 등
을 중수하고 종鍾, 경磬, 법고法鼓 등을 갖추어 대대적으로 중창하였다. 조
선시대에 와서는 1677년 숙종 3년에는 도인道仁 화상, 천순天淳 화상, 도의道
儀 화상 등이 보경사의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1695년 가을에 준공하였으며,
삼존불상과 영산전靈山殿의 후불탱화도 조성하였다. 그때 초한草閑 화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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