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고경 - 2021년 6월호 Vol.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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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사·통도사·고양 흥국사·남양주 흥국사·정양사·실상사·송광사·기림사
정도가 언뜻 떠오른다. 이중에 전등사는 원래 약사전이 아니었지만 19세기
에 들어 약사전으로 사용된 경우에 해당한다. 극락전에 대칭되는 약사전의
배치는 실제 통도사의 사례를 제외하고는 없다. 이처럼 극락전에 비해 약사
전의 조영 사례가 적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건물이야 현판을 바꾸어 다는 경우가 많으니 정말 약사전이 극락전에 비
해 적은 수가 지어졌다는 것을 파악하는 방법으로는 불상의 조성 경향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확인을 한다고 해도 약
사불이 조선시대에 주존主尊이나 독존獨尊으로 봉안된 사례는 아미타불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이렇게 큰 수적 차이를 보이는 이유를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우선 ‘아마타(우) - 석가모니(중앙) - 약사(좌)’로 구성된 삼세불의 구성이 가
장 일반적인 조합이었기 때문에 굳이 약사불을 별도로 조성하지 않았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이에 반해 아미타불은 삼세불의 보처補處로도 조성되었
지만 대세지 보살과 관음 보살을 보처로 하는 주불로도 많이 조성되었기
때문에 극락전의 수가 많은 것이다.
칠성신앙은 약사신앙의 대체제
그렇다면 약사불과 아미타불의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 사실 이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다. 약사불은 병을 치유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등의 현세구복적 신앙을 대표하지만 아미타불은 극락왕생을 보
장하는 내세신앙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피할 수 없는 끔찍한 전쟁이나 가뭄과 같은 천재지변에서 비롯된 수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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