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4 - 고경 - 2021년 8월호 Vol.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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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란토를 독학했던 만큼
스님의 어학 탐구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아울러 이
책 첫 장에는 『태고화상어
록』에 수록된 「시소선인示紹
禪人」과 「고담화상법어古潭
和尙法語」의 원문이 기록되
어 있다. 두 편 모두 조주무
사진 4. 『선문일송』.
자趙州無字 화두의 묘용을
담고 있는 글이다. 1912년에 태어나 암울한 일제 강점기 속에서 자랐던 청
년 이영주는 삶에 대해 고민과 해답을 책에서 찾고자 했으며 결국 불교의
화두 참구로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큰스님이 출가 후에 범어梵語를 독습한 흔적도 책에서 확인된다. 범자 진
언을 학습하기 위해 『불교』 잡지에 수록된 「범어와 조선어와의 관계」(1928년
11월 제53호)와 「범파양어의 발음법에서 본 조선어발음에 관한 일고찰」(1931
년 2월 제80호)이라는 2편의 논문을 스님이 참고했던 것이다. 실제 『선문일
송禪門日誦』에 실린 「대불정능엄신주」 한자 원문 옆에 범자를 기록하며 일일
이 연구한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찰에서의 일상의례는 주
로 『석문의범釋門儀範』에 의거해 행해지는 반면 성철 큰스님이 주도한 봉암
사 결사와 백련암에서만 『선문일송』(사진 4)의 영향을 받고 있다. 금릉각경처
에서 간행한 『선문일송』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271쪽).
이 밖에 『조론약주肇論略注』와 『육조단경전주』 등에서 확인된 별지와 『주
심부註心賦』에 원문 교정 기록 등 책 곳곳에 남겨진 큰스님의 친필 메모는
출가 전후 스님의 교학과 사상을 새롭게 연구할 수 있을 자료들이다. 백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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