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1 - 고경 - 2021년 9월호 Vol.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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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하였다고 한 것으로 이해할 여지는 있다. 이는 종밀이 “하택은 먼저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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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고, 그 깨달음에 의지해 닦는다고 하였다.” 라고 신회의 돈오를 평가
는 점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선에 ‘돈오’를 처음으로 도입한 이는 분명하게 신회이고, 비
록 상세하게 언급하지 않았지만, ‘자불성自佛性’으로부터 ‘자성自性’의 개념
을 이끌고, 또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제창한 이도 바로 신회라고 할 수 있
다. 한편 종밀은 신회의 선사상적 특질을 ‘지知’라는 한 글자로 표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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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온갖 묘함으로 들어가는 문[衆妙之門]” 으로 파악하여 개괄함에 따
라서 후대에 있어 신회 선사를 ‘지해종도知解宗徒’라고 비하되는 빌미를 제
공했다고 할 수 있는데, 어록을 통관하면 신회가 강조하는 것은 ‘견見’이지
결코 ‘지’가 아님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하택 신회 선사는 앞에서 언급한 호적의 평가와 같이 중국선, 엄밀하
게 말하자면 조사선을 건립한 공로가 있다고 하겠다. 비록 그가 제창한
‘서천팔조’나 ‘가사袈裟 전법傳法’ 등이 조작된 것이라 할지라도, 나아가 ‘돈
오’의 개념에 철저하지 못한 혐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평생을 목숨을 걸고
혜능의 남종선을 선양하기 위해 바쳤던 노력은 분명하게 평가해야만 할
것이다.
14) 『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卍續藏63, 35c), “荷澤則必先頓悟, 依悟而修.”
15) 宗密, 『禪源諸詮集都序』(大正藏48, 403a), “知之一字, 衆妙之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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