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9 - 고경 - 2021년 9월호 Vol. 101
P. 99
당시 많은 유학승들
이 당나라에 가서 조사
들 문하에서 몇 년간 유
학하고 오면 이미 ‘깨달
음’을 얻고 법을 얻은 것
인지 의문이 들고, 또 그
때 말하는 ‘깨달음’이 과
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분명하게 밝혀놓은 바가
없다. 당시 교법과 선법
과의 차이를 이해하고,
자신이 배운 선사의 주
장이 무엇인지를 이해하 사진 2. 수철 화상 부도탑.
고 들어와 그런 내용을
신라에 전파한 것인지 아니면 ‘그 무엇의 깨달음’을 터득한 것인지 등에 관
해 상세하게 전하는 자료는 찾기 어렵다. 깨달은 사람에게서 깨달은 사람
에게 구전으로 비전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깨달음이 무엇인지’가 기록으로
남아 있어야 후세 사람들이 알 수 있을 텐 데 아쉽게도 이에 관해서는 분
명한 것이 없다. 교학을 중시하는 법상종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았는지를
알려주는 자료도 찾기가 쉽지 않다.
한국불교사에서 논란이 있는 ‘구산선문’은 그 명칭이 신라 말기에 정해
져 불린 것은 아니고 고려시대에 와서 만들어진 것이며, 그것도 개산조開
山祖의 교화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제자 대에 와서 해당 문파의
성쇠에 따라 붙여진 것이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스승만 있는 상태로 있다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