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2 - 고경 - 2021년 9월호 Vol.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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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균정과 그의 아들 김우
징金祐徵(?-839)을 타도한 김
제륭이 희강왕僖康王(836-838)
이 되었다. 아들 없는 흥덕왕
에게는 동생이 있어 그가 선
강 태자로 되었지만 형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흥덕왕이 죽은 다음에는 그
후계가 문제가 될 수밖에 없
었다. 아무튼 희강왕도 왕위
쟁탈전에서 패를 갈라 싸운
사진 5. 계단이 남아 있는 국내 유일 석등.
끝에 삼촌을 죽이고 왕이 되
었지만 그를 옹립한 세력들이 다시 자신의 측근들을 살해하는 반란을 일
으키자 왕위를 포기하고 목을 매고 자살하였다. 희강왕이 자살한 다음에
왕위에 오른 이가 민애왕閔哀王(817-839)인데, 선강 태자의 아들이다. 민애
왕도 즉위하자 마자 장보고 세력에 의지한 김우징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당
하다가 결국 살해되었고, 김우징이 바로 즉위한 후 4개월 만에 죽게 되는
신무왕神武王 (839-839)이다.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던 신라는 하대로 오면
서 이렇게 왕위쟁탈전으로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이미 신라의 왕실은 중심을 잃었고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떨어진 각 지방에서 중심세력들이 힘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중앙
권력의 와해와 지방 호족세력들의 난립으로 통일신라는 쇠망의 길을 걷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불교는 왕실을 중심으로 한 교종 중심의 불교와 각
지방의 호족들과 결탁한 선종 중심의 불교로 나타나고, 특히 각 지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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