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 - 고경 - 2021년 11월호 Vol.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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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주창하는 것이었으니 불교학계의 놀라움과 당황함은 필설로 다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불교학계는 20여 년간 뜨거운 돈점논쟁頓漸
論爭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간혹 노학자님들을 뵈면
“그때의 논쟁이야말로 불교학계의 성찬이자 행운”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돈점논쟁이 학계를 뜨겁게 달구면서 빈승도 덩달아 바빠졌습니다. 학술
발표장에 가보면 점수파 교수님들은 맹공을 퍼붓기 일쑤였는데, 『선문정
로』에 대해 발표한 분들의 답변은 횡설수설하여 제자 된 도리로 마음이 찢
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큰스님, 돈오돈수頓悟頓修 사상은 해인총림 담 안
에서만 맴돌고 있습니다. 돈오돈수를 설파하시려면 인재 양성을 하셔야겠
습니다.” 안마를 받고 계시던 큰스님께서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벌떡 일어
나 앉으시며 오른손으로 제 왼쪽 뺨을 갈기시더니 “니 지금 인재 양성이라
캤나? 키울 인재가 없는데 나보고 우짜란 말이고! 다 머저리 곰 같은 새끼
만 우글거리니 나도 별수 없이 지내는기라. 이놈아! 꼴도 보기 싫다! 어서
나가라” 하시면서 또 뺨을 치셨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스님께서 찾으셔서 용기를 내어 또 말씀을 올렸습니다.
“인재 양성이 힘드시다면 역대 조사스님들의 어록 중에서 돈오돈수사상을
주창한 어록들을 선별, 번역해 알리면 큰스님 사상의 울타리가 되어 지금
보다는 원군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하고 여쭈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래, 그것도 한 가지 방법은 방법이겠네!”라고 응수해 주셨습니다. 그 말
씀이 계기가 되어 그 후 10여 년 동안 ‘선림고경총서’ 37권과 상기병을 다
스릴 때 5~6년 동안 녹취해 둔 백일법문 녹취록을 정리하여 ‘성철스님법
어집’ 11권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1993년 9월 21일, 서울 출판문화회관
에서 완간 회향법회를 봉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종정 예하께서는 그 해 11
월 4일, 열반에 드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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