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5 - 고경 - 2022년 2월호 Vol.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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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교에 대한, 혹은 일본불교의 방향성은 어디까지나 서구를 철저하게 의
식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한발 더 나아가 모쿠라이는 『뭐지 이 기회를 타지 않으면何ゾ此機会に乗ゼ
ザル』(1891)에서, “일본불교를 구미 각국에 선교할 호기회에 이르렀다.”며
적극적인 해외 포교를 주장했다. 구미 포교를 통해 유럽과 미국에서 불교
가 성행하면, 서구에 심취하는 풍조가 있는 일본인이 서구의 풍조를 따라
해 일본 내에서 불교가 더욱 융성해질 것이라고 기술했다.
모쿠라이의 주장은 당시 일본불교가 처한 위기감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메이지 20년(1887) 이후 일본 전역에 확산되었다. 다
만, 이 시기는 일본 내에서 국수주의 운동이 크게 지지를 받고 있던 시기
로 모쿠라이 역시 국수주의 운동에 참여했다. 모쿠라이의 일본불교 우위
성이나 해외 포교의 중요성은 그의 국수주의 운동과 연결되어 있고, ‘인도
땅을 밟은 최초의 일본인 승려’라는 그의 위업 역시 이를 위해 이용되었다
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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