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7 - 고경 - 2022년 3월호 Vol.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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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교무원이 출범할 당
시 기본금을 60만 원으로 책
정했었는데, 1929년 3월 교무
원 평의원 총회에서 불교전수
학교를 전문학교로 승격시키
기 위해 40만 원 증자안을 결
정하였다. 당시 청년총동맹
중앙집행위원이자 교무원 재
무부원으로 재정 실무를 담당
하고 있던 정상진(남명)은 『불
교』지에 이를 반대하는 글을
발표하였고, 허영호(분개생)는
정상진의 견해에 반론을 제기
사진 4. 허영호(분개생)의 논설(9,10합호).
하였다.
허영호와 정상진은 지면을 통해 격렬하게 논쟁하였고, 결국에는 감정적
인 표현까지 드러내며 파국 일로로 치달았다. 중앙불전의 학감으로 있던
허영호, 재단법인 교무원의 재무부원 정상진의 갈등은 중앙불전과 교무원
간의 알력으로 비화되었다. 이후 중앙불전의 강사 다섯 명이 학감인 허영
호를 해임하라는 청원을 교무원에 제기하였고, 이로 인해 교무원과 중앙
불전의 갈등이 첨예하게 전개되었다. (결국 허영호는 중앙불전 학감 겸 교수직에
서 사면辭免되었다.)
이러한 총동맹원 내부의 갈등은 이제 그들이 균일한 지향을 가진 순수
한 청년집단에서 교단의 이해 관계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는 경쟁 관계로
변해 갔다는 것을 증명한다. 총동맹 최고의 기획가인 이용조는 이 사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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