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4 - 고경 - 2022년 6월호 Vol.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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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였다. 선불교가 역사적이고 지적으
로 이해될 수 있는 상황 안에 놓이고 그
럼으로써 일의 선후관계가 보여질 때 제
대로 이해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는 선불교가 순전히 역사적인 현상이
고, 선불교를 역사적인 맥락으로 환원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대해 스즈키는 호적의 연구 방법
을 따른다면 선의 진정한 체험과 스승이
사진 5. 하택신회어록 한글번역본. 제자에게 전해 주려던 선불교의 본질을
얻을 수 없다고 반대하였다. 선에 대한 역사주의, 환원주의적 해석을 단호
히 거부하였다. 호적에 대한 답글에서 스즈키는 이렇게 말하였다. “호적은
선불교 역사에 대하여 상당한 양의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의 행위자
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 선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구든
지 먼저 반야의 지혜 또는 직관지를 먼저 체득한 다음에 그것이 대상화된
표현들을 연구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선불교를 바르게 이
해하는 것은 ‘선禪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다. 스즈키는 선의 상징적 특
성으로 인식되는 돈오頓悟의 가르침을 하택신회가 결정적으로 부각시켰다
고 높이 평가한 호적의 주장을 거부하였다. 스즈키와 호적의 논쟁은 선불
교 해석을 위해 사용한 방법론의 기본 전제가 부딪히면서 발생한 것이다.
호적의 선불교 연구방법론은 근대시기 불교 연구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호적은 단순히 오래된 전통이라고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겠다는 분명한 입
장을 견지하였다. 그는 기존 선불교 전통과 문헌에 대한 의심에서 연구를
시작하였고, 선불교 문헌을 순수하게 사료로 취급하고 역사적 사실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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