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9 - 고경 - 2022년 6월호 Vol.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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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일본에서 만든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후 강좌파와 대립각을 세웠던 노
             동파도 검거되면서 일본 내에서 ‘일본 자본주의’ 논쟁도 중단되었다.
               종교에 대한 핫토리의 시각은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일맥상통한다. 그 역

             시 종교에 대해 엄격하고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평가한 것에 대해 절대적 동조는 하지 않았다.


                  “현존하는 계급관계를 철폐하고, 인류평등의 상태를 실현하려는 이

                  상주의는 모든 종교에 내포되어 있다. 또 비슷한 이상이 마르크스주

                  의에, 그리고 모든 사회주의에도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동
                  일성에도 포함되지 않은, 양측이 절대적으로 다른 점을 말하자면, 그

                  것은 도달하는 방법일 것이다.”         『마르크시즘과 종교』 중 일부(1930년)



               핫토리는 종교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종교가
             인류를 해방시킬 당연한 절차로

             써 미래를 가정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종교와 마르크시즘은
             이상을  실현할  장소를  어디로
             할 것인가의 문제로 종교가 인

             류사에 행한 결과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전
             제하에 그는 마르크시즘과 종교
             를 화합한 ‘공동전선共同戰線’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사진 3. 법정대학. 핫토리가 1952년부터 교수로 재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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