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9 - 고경 - 2022년 7월호 Vol.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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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양문회가 산
스크리트본의
『대승기신론』
에 대한 정보를
듣기 위해 난죠
를 찾아오면서
부터이다. 이
후 난죠는 중국
사진 7, 7-1. 난죠 카탈로그( A Catalogue of the Chinese Translation of the Buddhist
에서 없어진 불 Tripitaka , 1883)표지와 내지.
전들을 양문회
에게 보내는 등 이들의 교류는 30여 년간 지속되었다.
가사와라와 달리 영국에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던 난죠에게 귀국
은 그의 의도와 달리 급작스러운 일이었다. 그의 친부의 사망과 양모의 병
세 소식을 듣고 귀국을 결심했다. 뮬러가 2~3년만 더 있으면 그동안 이룬
것보다 더 큰 업적을 이룰 것이라고 만류했지만, 결국 난죠는 일본을 떠난
지 8년 반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난죠 카탈로그로 대변되는 영국에서의 학문적 성과는 그 자체로 큰 성
과이고 후학들에게 의의가 크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는 어디까지나 교정과
목록화 작업이었다. 물론 이는 난죠의 성과를 폄훼하거나 축소하려는 것
은 아니다. 필자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성과이다. 다만 목록화 작업에서
한 발 나아간 연구의 진전이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난죠는 귀
국 후 일본에서의 활동과 인도 체험을 통해 성장을 이룬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 지면에서 난죠의 인도 체험이 그의 학문체계를 어떻게 성장시키고 변
화시켰는지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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