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8 - 고경 - 2022년 7월호 Vol.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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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의 학문적 교류


           난죠의 영국 유학생활은 크게 산스크리트어 교정 작업과 함께 학문적

          시각의 확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881년, 난죠와 그의 동료 가사하라는

          뮬러의 제안으로 베를린에서 열리는 제5회 국제동양학대회에 참여할 기회
          를 얻었다. 국제동양학대회는 1873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열린 이래 아
          시아와 아프리카의 문헌학·고고학 연구가 중심이 되는 학회였다. 난죠가

          이곳에서 여러 문헌학자들을 만났다는 점도 큰 소득이지만 그보다 더 큰

          소득은 프랑스 파리에서였다.
           난죠 일행은 영국으로 귀국길에 프랑스에서 한 달 정도 머물렀는데, 이
          때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산스크리트어 경전 사본을 빌릴 수 있게 되었다.

          난죠와 가사하라는 빌린 사본들을 밤낮으로 필사했다. 난죠가 자신의 회

          고록에서 ‘그때만큼 바쁜 적이 없었다’라고 회고할 만큼 방대한 산스크리
          트어 문헌을 확보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 기간이었다. 이때 필사
          한 사본들은 ‘번역명의대집飜譯名義大集’과 ‘불소행찬佛所行讚’ 등이다. 이들

          이 유학시절에 주로 필사한 것은 대승경전류로, 여기에는 난죠와 가사하

          라의 의지와 함께 동본원사 측의 요구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사하라
          가 폐결핵으로 일찍 귀국하게 되자 동본원사 측에서는 뮬러에게 서신을
          보냈다. 서신에는 난죠와 가사하라를 잘 지도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인

          사와 함께 원전 필사본을 일본으로 가지고 오는 것에 대한 기대감을 전하

          고 있다.
           난죠와 양문회楊文會(1837~1911)의 교류 역시 난죠의 유학생활 중 빼놓을
          수 없는 성과이다. 난죠와 양문회의 만남과 교류에 대해서는 여러 글에서

          소개된 만큼 여기에서는 간단하게 정리하고 넘어가겠다. 이들의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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