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0 - 고경 - 2022년 9월호 Vol.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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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서지 않고 다시 “여기에는 그대와 나밖에 없으니 어서 말해 보시오.”
“정히 그렇다면 답하리다. 내가 먹는 것은 사람의 더운 살과 끓는 피요.”
설산동자는 한참 동안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내가 더 살고 죽는다 해도 진리를 얻지 못하면 소용이 없으니, 나머지
게송을 일러주면 이 몸으로 공양하겠소.”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나찰
은, “어리석도다. 그대는 겨우 여덟 글자의 게송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려
하는가?”라고 하니 오히려 설산동자는, “참말로 그대는 무지하구나! 옹기
그릇을 깨고 금그릇을 얻는다면 누구라도 기꺼이 옹기그릇을 깰 것이다.
무상한 이 몸을 버리고 금강신金剛身을 얻으려는 것이니 게송의 나머지 반
을 들어서 깨달음을 얻는다면 아무런 미련이나 후회도 없다. 어서 나머지
게송을 일러주오.”
이에 나찰은 지그시 눈을 감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게송을 읊었다.
“일어남과 사라짐이 사라진 적멸이 열반의 즐거움이다[生滅滅已 寂滅
爲樂].”
동자는 게송을 듣자 환희심이 샘솟았다. 게송을 깊이 새기고는, 이대로
죽으면 이 귀중한 진리를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으니 바위나 돌, 나무 등
에 게송을 써 두고 높은 나무에 올라가 나찰에게 몸을 던졌다. 그러자 그
의 몸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나찰은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서 수행자를 받
아 땅에 내려놓으며 찬탄하고, 여러 천신과 함께 발아래 엎드려 예배를 올
렸다. 법을 위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정진력을 설산동자의 구법 벽화
는 극적으로 보여 주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정진을 다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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