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 - 고경 - 2023년 1월호 Vol.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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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보면 어딘가 어색한 부분이 꼭 있어요. 가사는 그 가사를 수하
는 사람에게 딱 맞고 편안해야 합니다. 그대로가 작품이니까요.”
무상스님은 1960년대 중반 선방에 방부를 들이며 수행하다가 가사불사
에 동참했다. 당시는 가사 한 벌조차 쉬이 구할 수 없던 시기였다. 스님은
대전 심광사의 가사불사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그때 가사불사의 편수는
1930~40년대 법주사 주지를 역임한 장석상 스님의 손상좌인 법장스님이
었다. 법장스님이 만든 가사를 최고로 여기던 시절이다.
무상스님은 가사 한 벌을 얻기 위해 법장스님 옆에서 일손을 거들었다.
많게는 100명이 모여 한쪽에선 천을 재단하고, 다른 쪽에선 바느질을 하고,
누군가는 다리미질을 했다. 편수인 법장스님은 그 모든 과정을 꿰뚫어보
고 있었다. 심광사 가사불사를 마치고 무상스님은 다시 선방에 들어갔다.
그런데 안거가 끝날 때마다 법장스님에게서 가사불사를 같이 하러 가자
는 연락이 왔다. 그렇게 무상스님은 법장스님을 따라 꾸준히 가사불사에
참여했다. 윤달이 든 어느 해, 통도사와 해인사 삼선암에서 동시에 법장스
님에게 가사불사를 도와달라고 요청이 왔다. 이때 법장스님은 무상스님에
게 자신이 쓰던 대나무 ‘가사 자’를 건네주며 삼선암의 가사불사를 맡게 했
다. 법장의 ‘가사 맥’이 무상에게 이어진 것이다.
“가사는 조각과 조각이 만나는 조엽이 중요해요. 바느질 한 뜸 어
긋나면 전체가 틀어져요. 모서리에는 천왕문첩이 들어가고, 하품
(9·11·13조)은 기다란 조각 2개와 짧은 것 1개가 이어져 1조가 되
요. 9조 가사면 총 아홉 줄이 됩니다. 중품(15·17·19조). 상품
(21·23·25조)으로 갈수록 긴 것이 하나씩 늘어나요. 옛날에 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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