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 - 고경 - 2023년 4월호 Vol.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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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저장성 항저우 봉래봉 석굴에 조각된 포대화상. 사진: 위키백과.


             나만 들고 다니다가 사람들의 뒤꼭지를 똑똑 치면서 돈 한 닢 달라 하곤 하
             였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법문이었습니다. 또 예를 들어, 생선 장수를
             보면 생선 한 마리만 달라고 하여 한 입만 베어 먹고 포대에 넣고 다녔

             습니다.

               그렇게 무엇이든 눈에 띄기만 하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장차 가뭄
             이 계속될 것 같으면 흐린 날에도 삿갓을 쓰고 다니고, 장마가 계속될 것
             같으면 맑은 날인데도 굽이 높은 나막신을 신고 다녔습니다. 이런 식으로

             앞일을 예견하는데 하나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포대화상이 돌아가실 때(916년)에는 명주明州 악림사嶽林寺 동쪽 행랑 밑
             에서 법문을 하면서 앉은 채로 입적했습니다.
               그때 이런 게송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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