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2 - 고경 - 2023년 5월호 Vol.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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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저서에는 회교에 대한 편견 또한 읽히지만, 회교에 대한 이해는 비
교적 구체적이다. 북경에 도착한 이후 오구루스는 라마교의 위세가 기존
의 중국불교를 능가한다는 사실을 접하고 다시 한 번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가 일본에서 들었던 라마교는 기괴하고 인간으로 변한 도깨비라는 기피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직접 라마사원을 방문해 라마승과 회
견을 하면서 라마교가 청淸 조정의 존경을 받고 대단한 정치력을 가졌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상하이부터 북경에 이르기까지 오구루스는 각 지역의 사원을 방문했다.
중국어가 능통하지 않아 주로 필담으로 주고받았지만, 그는 이 여정에서
중국불교의 무력함과 쇠퇴함을 체감하고 이를 본국에 보고했다.
“북경에는 백여 개의 사원이 있으나 학문을 하는 곳은 내가 머무는
용천사龍泉寺가 유일하다. 그 외에는 글을 모르는 어리석은 승려들
뿐이다. 오대산은 육백 개, 아미산은 삼백 개, 보타산은 이백 개,
구화산에 삼백 개의 사원이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고승은 없
다. 구습만이 남아 장례식의 관을 1년간 사원에 두고 현세의 행복
을 기원한다. 승은 무엇을 목적으로 염불하는 것인가. 속은 마음
안에 불법이 없다.” -『북경기사』 중 일부-
기대가 큰 만큼 실망과 좌절도 컸다. 일본의 중국불교에 대한 동경은 오
구루스의 여정 루트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문수신앙의 성지 오대산, 보
현신앙의 성지 아미산, 관음신앙의 성지 보타산, 지장신앙의 성지 구화산.
그가 불교 성지에서 만나길 바랐던 고승들은 더는 존재하지 않고, 대사찰
에 남아 있는 승려들도 스무 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가 만난 중국 승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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