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8 - 고경 - 2023년 5월호 Vol.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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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는 그중에서도 ‘함의원 삼재三才’로 불릴 만큼 뛰어났다. 그는 이곳에
          서 6년간 수학하면서 마츠모토 핫카 등과 친교를 맺었다. 22세(1852)에는
          본격적으로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동본원사東本願寺의 기숙학교에 입학해

          수학했다.

           39세(1869)가 되던 해, 메이지 정부는 정토진종의 종파명을 ‘일향종一向
          宗’으로 바꾸라는 명령을 내렸다. 진종 내부는 정부의 명령에 수긍하기 어
          려웠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러한 가운데 오구

          루스 혼자 반대운동을 추진해 종명을 회복시키는 결과를 얻어냈다.

           이듬해 메이지 정부는 동본원사에 홋카이도北海道 개척을 명했다. 정부
          가 이러한 강제적 명령을 내린 데에는 징벌적 성격과 재정 조달이라는 측
          면이 강했다. 메이지 정부에 유연했던 서본원사와 달리, 동본원사는 여전

          히 구 에도막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토바·후시미 싸움鳥羽

          伏見の戦い에서 에도막부가 메이지 신정부에 패하면서, 동본원사의 문주인
          오타니 코에이大谷光瑩는 충성을 맹세하는 서약서를 써서 신정부에 보냈다.
          이 토바·후시미 싸움을 기점으로 2년여에 걸친 내전[戊辰戦争, 1868~69]이 일

          어났고, 메이지 신정부는 전비戰費로 인해 재정 상황이 악화되었다.

           1869년 6월, 동본원사 측은 ‘홋카이도 개척 의향서’를 제출하며 정부의















          사진 2.  토바·후시미 싸움(1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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