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8 - 고경 - 2023년 6월호 Vol. 122
P. 138

적으로 바꾸었다. 일본 본원사파 본부에서 파견한 교구장을 더 이상 받아
          들이지 않기로 결정하고, 교구 소속의 스님을 교구장으로 선출하기로 하
          였다. 정책 결정권도 출가자 그룹에서 재가자 그룹으로 이양하여 민주화

          하였다. 코도 후지타니 스님이 교구장이 되었는데, 그는 일본인 2세 뉴톤

          이시우라 스님을 하와이 별원의 영어부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이시우라 스님의 지도력으로 많은 청년들이 일요 영어법회에 참석하였
          다. 일본식 또는 중국식 독경은 범어식 또는 영어식 독경으로 바뀌었다. 하

          와이 교구장을 역임한 코도 후지타니 스님의 아들인 요시아키 후지타니 스

          님이 1960년 영어부 책임자가 되었다. 후지타니 스님은 하와이 별원을 대
          표하여 종교 일치주의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하와이 별원의 신자들은 호놀룰루의 유태교, 유니테어리언unitarian, 성

          공회의 신자들과 더불어 1960년 추수감사절 예배를 공동으로 주최하였다.

          하와이 교구는 1960년 초 기독교의 크리스마스와 부활절과 같이 부처님오
          신날을 하와이주 국경일로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하와이주 하원의원으로
          하와이 정토진종 교구 신자인 잭 수와 그리고 주 상원의원으로 역시 하와

          이 교구 신자인 카주히사 아베가 부처님오신날인 4월 8일을 주 국경일로

          지정하는 법안을 하와이주의회에 상정하였다. 4만 명 이상이 서명하여 부
          처님오신날을 주 국경일로 지정해 달라고 주의회에 청원하였다. 하와이의
          대표적인 노조들도 일본불교를 응원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회는

          부처님오신날을 주 국경일로 지정하지 않았다.

           하와이의 다양한 민족적, 인종적, 그리고 문화적 배경 때문에 하와이 주
          민의 종교적 배경은 매우 다양하였다. 하와이 토속종교, 기독교의 신교와
          구교, 힌두교, 유태교, 이슬람교, 신도, 그리고 중국과 일본불교가 하와이

          에 병존했다. 그 가운데 일본 이민자의 수가 하와이에 가장 많은 관계로 일



          136
   133   134   135   136   137   138   139   140   141   142   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