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6 - 고경 - 2023년 7월호 Vol.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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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갑니다. 여름에는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서
                                안변 석왕사, 귀주사歸州寺 혹은 묘향산으로 갑
                                니다.

                                  당시 수좌치고 마하연선방을 거치지 않는 사

                                람은 인정 못 받는다고 했어요. 그 수좌들은 표
                                훈사의 주지 원허스님을 꼭 찾아가서 인사를
                                드려요. 스님께서는 정진하는 수좌들이야말로

                                한국불교의 기둥이니 꼭 보호하고 후원해야 된

          사진 9.  원허스님 발행 <금강산>
              잡지 창간호(1935.9).   다고 생각하셨대요. 그때마다 꼭 차비, 금일봉
                                을 후하게 드렸지요.
           1945년에 광복이 되었지만 북한 정권에서는 사회의 지도층이나 지주들

          을 반동계급으로 몰아붙였어요. 절에도 주지급에 있던 사람들은 다 반동

          계급입니다. 도저히 남아 있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예요. 그래서 나도 피
          난 온 거고요. 원허스님은 1947년 경 38선을 넘었대요. 스님은 겨울 안거
          를 청풍당 선원에서 지내고 음력 3월에 선암사로 오셨어요. 그보다 앞서

          해방 전 석암스님이 표훈사 마하연선방에서 우리 노장스님을 뵌 일이 있

          었다고 해요.
           원허스님이 표훈사에 계실 때야 상좌들이 여럿 있었지만 월남하신 뒤에
          는 없었지요. 그래서 후원에서 일하는 나를 불러 가사장삼 입도록 하여 큰

          방으로 오라 했던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덤으로 계는 받고, 한 달 후에

          비로소 원허 노장님을 만나 상좌가 됐어요. 나는 선암사에 그대로 남아서
          5년 가까이 있었어요. 노장님은 그해 여름을 지나 강원도 낙산사로 가셨
          어요. 당시 휴전이 됐으니까 조만간 남북이 소통해서 표훈사로 돌아갈 것

          이라고 생각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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