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8 - 고경 - 2023년 7월호 Vol.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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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고추장, 두릅, 더덕이 입에 착 사진 4. 밥을 먹었으면 밥그릇은 씻었는가?
감긴다.
사는 하는지 몰라도 소리 내어 인사하는 스님은 없었습니다. 이 고요함이
봉암사 식당에서 느낀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공양이란 단순히 밥만 먹는 것
만이 아니라 그 시공간을 즐긴다는 의미도 있으니까요.
커다란 대접에 밥과 나물들을 골고루 담고, 국은 국그릇에 따로 담습니다.
김치, 버섯, 두릅, 더덕, 양배추 생채, 김, 콩나물·두부찌개, 근대국입니다.
김치, 양배추, 콩나물·두부찌개가 다 맛있습니다. 특히 직접 재배하고 채취
한 두릅과 더덕은 입에 착 감깁니다. 근대국의 식감과 향긋한 나물 향은 어
릴 때부터 좋아했습니다.
고추장 맛도 기가 막힙니다. 채식은 은근히 까다로운 음식입니다. 풋내
도 나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이 다 살아 있어서 먹는 내내 기분이 상
쾌하였습니다. 음식도 맛있었지만 수좌들의 삽상한 기운을 느낄 수 있어
서 더욱 좋았습니다.
밥을 먹고 나면 불자들은 스스로 식기를 씻고 물기를 닦아 보관함에 담
아두고 나옵니다. 이렇게 그릇을 씻는 데에는 심오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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