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2 - 고경 - 2023년 10월호 Vol.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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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아주 상세하게 설명했다.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면 “1997년 6월
게이 및 레즈비언 불교도들과 달라이 라마 간의 만남은 성평등의 이름으
로 전통을 변용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현저하게 부각했다.
이 만남은 불교운동가들의 요청으로 열렸다. 우선은 인권 주창자의 입장
에서, 그 다음에는 불교 승려이자 지도자의 입장에서 달라이 라마의 각기
다른 답변은 미국의 진보주의적 이상과 전통에 근거한 종교적 정통성 사
이의 균형 유지와 관련된 복잡한 과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인권에 관한 한
달라이 라마는 분명하게 친親 게이적인 입장을 취했다. ‘사회가 성적인 성
향을 근거로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하면서 그
는 완전한 인권을 얻기 위해 여러분이 벌이는 운동은 합당하고 논리에도
맞습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 종교 전통의 지도자로서 달라이 라마가 내놓은 답변은 이보
다 훨씬 더 복잡했다. 그는 불교의 모든 행동규범에 관한 문제는 불교 전
통 및 수행의 목표, 즉 번뇌와 집착의 제거라는 목표와 관련지어서 고찰해
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전과 전통의 권위가 크기 때문에 심지어 겔룩파 종
단의 수장이자 티베트 국민의 영적 지도자인 자신조차도 그것을 일방적으
로 바꿀 권한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달라이 라마는 불교 전통이 고대 인도의 아주 독특
한 문화적 환경 아래서 형성되었다는 말도 했다. 아시아 불교의 역사를 통
틀어서 다르마는 새로운 배경에서 다르게 해석되어 왔다. 그는 대표들이
고대의 문헌들을 현대 미국의 상황에 적합하도록 새롭게 이해하기 위해서
는 미국불교의 다양한 공동체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제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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