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7 - 고경 - 2023년 10월호 Vol.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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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에는 운허스님
방이에요. 공부했
던 경전, 책 이런
거 차곡차곡 정리
해 뒀어요. 걸망에
는 가사와 장삼,
발우 등을 싸 가지
고 결제 전 부산
선암사에 다녀오 사진 2. 통도사 대웅전(조선고적도보, 1930년대 초).
겠다고 하니까 뭐
대수롭지 않게 다녀오라고 하셨어요.
여비를 조금 받았어요. 그리고는 통도사와의 작별을 고했어요. 부산에
간다 해 놓고 그 반대로 경주를 향해서 계속 걸었어요. 한두 시간에 한 번
버스가 있지만 매일 40~50리 걸었어요. 급하게도 안 걷고 천천히 걸어 경
주 가까이 갔어요. 사람들한테 물어 큰 절이거나 조그만 암자이거나 찾았
어요. 당시 정화가 끝났지만 그때만 해도 작은 절이나 암자에는 대처스님
네들이 그대로 살고 있는 데가 꽤 있었어요. 절 뺏으러 온 거 아닌가 하고
비구승이 온다고 하면 겁을 덜덜 냈단 말이지요.
어둡기 전에 절을 찾아 “객승 왔습니다.” 하고 떠나가라 소리를 쳐요. 그
렇게 하면 한참 기다려도 감히 내다보지 못하고 문틈으로 엿봅니다. 개의
치 않고 마루에다가 턱 하니 걸망 내려놓고 법당에 올라가 부처님께 예배
드리고 나와서 법당부터 지저분하든지, 깨끗하든지 상관없이 도량을 싹 쓸
어요. 그동안 절 주인은 문틈으로 엿보고 있다가 밥상을 차려줘요. 소지 잘
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정이 들어 있는 밥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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