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5 - 고경 - 2024년 1월호 Vol.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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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들의 처지를 돌보는 선사들은 주로 치병, 적선, 주술, 멸죄, 복지
             등의 행위를 통해 민간 포교에 앞장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금지되었던
             고대 민간포교 현장에서 활동하는 선사들이 민중들에 의해 특별한 능력

             자들로 받들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는 그러한 승려들을 선사로 보

             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번뇌를 끊고 깨달음에 든 자라는 고유한 인식에
             앞서 선사야말로 현세이익을 줄 수 있는 존재로 받들어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궁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속일본기』에는 간병선사를 의

             사로서 지역에 파견하기도 하며, 궁중에 중용하는 기사가 나온다. 나아가
             지계와 간병에 뛰어난 10인의 간병선사제도를 두기까지 한다. 이들은 나
             이구부 십선사內供奉十禪師(궁중 도량에서 일하는 10명의 선사)라고 불렀다. 산림

             에서 수행하는 청정한 승려들이 궁중에서 불법을 매개로 치병까지 담당하

             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실제로 고대의 승려들은 의승醫僧 또는 승
             의僧醫로서 활약하고 있음을 여러 문헌에서 알 수 있다. 선사에 대한 이미
             지는 중국 선종의 대두 이래 다양한 방식으로 민간 혹은 권력층에 전달되

             고 있었다. 일본의 경우, 이처럼 치병과 간병에 선사들이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불법의 효용이 영과 육 모든 면을 치유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간과 사회가 점점 깊이 병들어 가는 상황에서 숙고해
             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아무튼 일본 고대의 선은 비록 발상지인 중국과는 시차가 느껴지지만,

             불법의 근원인 깨달음을 향한 열망이 일본에도 예외 없이 일어나고 있다
             는 점에서 선이 매우 보편적인 불법의 수행 체계임을 입증하고 있다. 이러
             한 고대 선사들의 노력이 불법의 토착화가 이뤄지는 중세 선종의 만개로

             이어지고 있음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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